본문 바로가기

TASTE

[경기도 맛집] 4계절 꿩 육수로 말아내는 평양냉면 진미집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냉면집마다 긴 줄이 늘어선다. 더위와 갈증을 식히는 데는 단연 평양냉면 물냉면이 으뜸간다. 하지만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냉면집 고르기가 우선이다.

평양냉면은 물냉면이 주축을 이루는 만큼, 냉면국물의 중요성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유명한 냉면집일수록 육수 뽑는 데 정성을 기울인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쇠고기 육수고 간혹 닭고기 육수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평양냉면의 본고장 평안도에서는 정통 평양냉면 국물 중 꿩 육수를 최상위에 놓는다. 순수한 꿩 육수만을 사용하거나 쇠고기 육수에 꿩 육수를 가미해 맛을 돋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통틀어 꿩 육수라 부른다.

여기에 잘 익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나 김칫국물을 알맞게 섞고 꿩고기를 다져 빚은 새알심을 몇 개 얹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처럼 닭 국물을 가미하고 닭고기를 추가로 곁들여 얹기도 하는데 전혀 다른 냉면이다. 서울 근교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계절 냉면육수에 꿩 국물을 가미하고 평양사람들이 꿩 알맹이라고 부르는 꿩고기 새알심을 얹어내며 긴 줄을 세우는 곳이 송추삼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송추평양면옥이다.

송추평양면옥은 1980년, 한적한 교외선 대로변에 기사식당처럼 문을 열었다. 누구도 이런 곳에 냉면집이 들어앉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곳이다. 그런데 주변 군부대의 장교들과 간혹 주말 나들이 가족들이 차를 세우고 들렀다가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가 입소문을 내면서 큰 어려움 없이 기적 같은 성장세를 이어왔다.

창업주 김영두(87) 씨 부부는 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 재학시절 6·25를 만나 1·4후퇴 때 월남한 실향민 1세대다. 김씨는 평안도 사람 특유의 뚝심과 부인 유정순(82) 씨의 타고난 음식솜씨를 바탕으로 냉면집을 냈고, 돈보다는 유소년시절 평양에서 먹었던 냉면 맛을 최대한 살려내 고향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이런 순수한 마음이 고객들과 소통했고, 문을 연 지 몇 해 만에 지금의 위치에 건물을 증축하고 평양냉면 간판을 큼직하게 내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들만 셋을 둔 김씨는 7순을 넘기면서 장남인 김용남(58) 씨 부부에게 송추평양냉면을 대물림했고, 둘째와 셋째 아들에게도 일산 탄현과 포천 신북면에 각각 평양냉면집을 열어주었다.

세 곳 모두 아무런 장식 없이 평양면옥 네 글자만 내걸었지만, 고객들이 스스로 지역 명칭을 붙여 탄현 평양냉면, 신북 평양냉면집이라고 부르면서 두터운 신뢰를 다져주고 있다. 어느 곳이나 최상의 평양식 물냉면을 말아낸다는 창업주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냉면 육수는 쇠고기 정육을 사용한 기본 육수에 다진 꿩고기로 빚은 새알심을 삶아내 자연스럽게 꿩 국물이 섞여들도록 하고, 식힌 육수를 육수 통에 옮길 때 동치미 국물을 알맞게 섞는다. 그리고 냉면을 말아낼 때 삶아서 식혀 놓은 꿩고기 새알심을 두어 개씩 얹는다.

국수사리는 매일 아침 메밀을 직접 빻아서 속가루만 채에 쳐서 쓰고, 전분이나 다른 가루는 섞지 않는다. 딱딱한 겉껍질을 벗긴 녹쌀(초록빛이 감도는 메밀 알곡)을 들여와 표면을 충분히 벗겨 내고 하얀 속가루만 사용하기 때문에 국수사리가 희고 질감이 부드럽다. 그래서 사리가 풀어지기 전에 얼른 먹어야 향미가 제대로 살아나고, 꿩 육수 고유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일러준다. 평양냉면으로는 최고의 조건을 추구하는 진미가 있다.

막국수에 가까운 거친 가루로 만든 냉면 맛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냉면 사리가 너무 희다고 의아심을 갖기도 하지만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냉면의 명가라고 소문난 서울의 장충동 평양냉면과 을밀대냉면의 사리도 비슷하다. 냉면의 격이 다른 만큼, 주 고객은 단연 서울과 경인 지역의 실향민 1~2세대와 진짜 평양냉면 애호가들이 주를 이룬다.

서울 강남과 분당, 일산 등 수도권에서 송추평양냉면을 다녀오려면 주행거리나 차량 운용비가 만만치 않은데도, 거리가 먼 곳일수록 3~4명씩 팀을 짜서 승용차편으로 오는 냉면 애호가들과 주말 가족단위 손님들이 줄을 이으면서 성수기에는 현관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20~30분씩 차례를 기다린다.

냉면에 곁들여 먹는 제육과 녹두지짐, 평양 만두도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녹두를 직접 갈아 고소하게 부쳐내는 녹두지짐은 돼지고기를 다듬고 남은 비계를 깔고 기름을 내가면서 옛날식으로 지져낸다. 그래서 식용유를 잔뜩 붓고 튀겨내듯 부치는 녹두부침과 차별하기 위해 메뉴판에 ‘녹두지짐’으로 올렸다고 한다.

접근하는 길은, 강남의 경우 올림픽 도로 끝자락에서 강동대교를 건너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송추IC를 기준으로 하는 쪽이 가장 편하고 빠르다. 강북과 강서 지역은 고양~벽제~송추로 이어지는 교외선 순환도로나 은평구 구파발에서 북한산 뒷길을 이용해 송추로 빠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메뉴 : 냉면 9천 원, 제육 1만 5천 원, 녹두지짐 8천 원, 왕만두 8천 원.
  • 주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114(송추삼거리)
  • 전화 : 031-826-4231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