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접어드는 음력 5~6월은 칼국시 먹는 절기다. 그 옛날 농촌의 이맘때면 햇보리와 햇밀이 나고 햇감자가 나는 달이다. 여기에다가 집 앞 텃밭의 열무와 부추 얼갈이배추가 먹기 좋게 자라고 울타리에 올린 호박넝쿨에는 애호박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경상도 안동지방에서는 수확한 햇밀을 갈아 칼국수를 밀고 애호박과 파란 얼갈이배추를 썰어 얹은 뒤 먹음직스럽게 끓였다. 그리고 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과 부추김치 열무김치를 얹어 먹었다. 햇감자를 갈아 애호박을 썰어 넣고 부친 감자전이 곁들여지고 나면 온 집안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무교동에서 청계천 모전교를 건너 종로통으로 빠지는 서린동 한국무역공사빌딩 지하층에 있는 안동국시집은 옛 안동국시의 이모저모를 격식 있게 갖춰내 손님들을 줄 세운다. 그 내력이 올해 15년 차로 접어들고 있다.
칼국수의 본고장 안동지역에서는 국수를 국시라 부른다. 가루를 반죽할 때 밀 냄새가 나지 않도록 밀가루에 콩가루를 약간 섞어 손으로 반죽해 썰어 끓인다. 담백한 사골국물에 삶아 내 맛이 한결 깊다. 공깃밥을 추가로 주문하면 차조밥을 담아내는데, 이 역시 안동지방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조밥칼국시라 부른다. 지금은 안동지방에서도 맛나기 쉽지 않은 전통적인 별미다.
주인 윤경혜 씨는 경북 예천이 고향이고 안동이 친가다. 안동조밥칼국수의 전통 기법을 어린 시절부터 오감으로 익혀왔다고. 서울에서 안동지역 조밥손칼국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라고 한다. 상차림이 정성스럽기로 이름나 있는 것도 안동의 친가가 양반댁이고 층층이 어른들을 모시고 있었던 덕이라고 한다.
굳이 밥을 곁들이지 않아도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 담백한 칼국수는 리필이 가능하고 여기에다 금방 갈아 부친 고소한 감자전과 싱싱하기 이를 데 없는 참문어데침을 한 접시 주문해 곁들여 놓으면 별미 점심은 물론 간단한 접대 자리로도 손색이 없는 멋스러움이 배어난다.
국시 말고도 안동지방의 또 다른 별미인 안동국밥도 있다. 국물을 낼 때 갈비뼈를 섞어 넣고 삶아 감치는 맛이 한결 세련되고, 파와 무가 푹 무르도록 끓인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서울의 육개장과 흡사하면서 고유한 안동국밥 맛을 제대로 실감하게 해준다.
안줏감도 감자전 외에 파전과 빈대떡이 있고 참문어데침과 제육 메밀묵무침이 갖춰있어 소주나 민속주를 곁들여 영남내륙의 본격적인 국숫집의 진미를 골고루 즐겨볼 수 있다. 깔끔한 한실로 꾸며진 70석 남짓한 공간이 점심은 물론, 간편한 식사모임과 약속장소로 무난하다.
- 메뉴 : 안동국시(1인분)7천 원, 콩국수(여름)8천 원. 안동국밥 8천 원, 감자전 1만 원, 문어데침(소)2만 원
- 주소 : 종로구 서린동 136 (한국무역공사빌딩 지하층)
- 전화 : 02-732-6493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