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 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덥게만 느껴지고 습도까지 높아 축축 쳐지진 않나요?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은 요즘뿐 아니라 사시사철 질리지 않고 찾게 되는 메뉴가 있죠. 바로 냉면이요. :-)
40년동안 평양냉면 원조 맛집으로 소문난 을밀대 냉면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냉면 맛집 베스트5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냉면집 말이에요.
이냉치열(以冷治熱)은 물로 불을 끄듯 찬물로 열기를 식혀주는 정공법이다. 무더운 날 빙수나 냉커피 냉면 등 찬 음식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당장은 시원하지만 에어컨 바로 앞에서 찬 음식으로 속을 가득 채우면 자칫 몸 안팎의 체온이 불균형상태가 지속되어 머리가 어지럽고 콧물이 나오는 여름 감기를 유발할 수 있다.
아니면 몸의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진 상태가 지속되어 설사나 배탈을 일으킬 수도 있다. 몸의 열기를 급격하게 힉히는 것보다는 서서히 자연스럽게 식혀주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래서 냉면집에는 회전식 선풍기를 매달아 방안의 온도를 골고루 조율해가며 에어컨의 온도도 너무 낮게 틀어놓으면 오히려 좋지 않다.
서울과 서울근교에서 여름철 찬 음식을 대표하는 냉면집들 중에 가장 긴 줄을 세운다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40년 전통의 평양냉면집, 을밀대
을밀대 냉면집은 공덕동 사거리에서 서강대 방향으로 서울디자인고교를 지나면서 마포KT와 염리동주민센터가 있는 골목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간다. 1970년 오픈해 40년이 넘는 내력을 지닌 평양냉면집이다. 창업주 김인주(2005년 작고)씨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월남해 대구에 머물다가 60년대 말 서울로 이주하면서 이곳에 냉면집을 연 것이 대물림 가업으로 이어지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평안도사람 특유의 소탈한 성품 그대로인 김 씨와 부인 이석남(70세)씨가 직접 말아내는 냉면 맛이 평양냉면 고유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을 잘 살려내, 특히 물냉면을 좋아하는 냉면애호가들이 한 겨울에도 찬바람을 무릅쓰고 긴 줄을 선다. 사계절 절기에 상관없이 식사시간대에 맞춰 을밀대에 가면 줄을 선다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알려져 있다.
순수한 평양냉면 고유의 맛
주 메뉴는 평양냉면 물냉면과 파 채에 얹혀 나오는 수육이다. 냉면 맛은 뛰어나게 각별하다기 보다는 순수한 평양 물냉면 고유의 맛이라 할 수 있다. 2대 가업을 이어받은 김영길씨는 자신의 냉면 맛이 고객들의 입맛을 따라 처음 시작할 때보다 맛이 조금씩 변천해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젊은 고객층이 늘어나면서 전분함량을 조금 높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메밀 함량이 일반 냉면집에 비하면 많은 편이어서 구수한 메밀국수 고유의 면발과 평양냉면 특유의 질감은 잃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시대와 고객들의 추향에 따라 함께 진화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육수는 쇠뼈 한 벌을 몽땅 넣고 삶아낸 기본 바탕에 양지수육을 알맞게 삶아내 맛을 돋운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섞지 않은 진국에 동치미국물을 가미하는데,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 고객들의 취향과 잘 교감하고 있다. 시중에 이름난 평양냉면집들에 비하면 면발이 다소 굵고 육수에 살얼음이 자박자박 잡히도록 차게 얼려 내는 것이 특징이고 젊은 고객층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있다. 여기에 겨자와 식초를 알맞게 풀어 넣어 맛을 돋우면 평양사람들이 추운 겨울철에 먹었던 평양냉면 물냉면의 찡한 맛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10년, 20년 단골 고객이 끊이지 않는 소박한 냉면집
냉면 꾸미로 한우 양지머리 삶은 편육을 두어 점 얹는데, 아무 냄새가 없이 부드럽고 고소하게 입맛을 돋운다. 육수와 국수사리 편육 모두 크게 흠 잡을 데가 없다. 이처럼 순수한 냉면 맛이 늘 먹어도 물리지 않고, 10년 20년씩 찾아가게 된다는 단골 고객들의 입소문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골목안의 소박한 냉면집이 언제 가도 긴 줄이 이어지게 만든다. 찬바람이 부는 날이나 무더운 여름날 길게 늘어선 고객들이 안쓰러워 앞뒷집을 차례로 사들여 자리를 늘려보았지만, 자리를 늘리면 줄 서는 손님도 자리를 늘린 만큼 따라 늘어나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한다. 햇볕이 내려쬐는 여름날 그늘진 골목길을 따라 두 겹으로 늘어선 고객들이 장관이다.
을밀대 정보
-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 147-6
- 전화번호 02-717-1922
- 주요 메뉴
- 물냉면 - 9,000원
- 수육 (大) - 50,000원
- 수육 (小) - 25,000원
- 녹두전 - 8,000원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