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추어탕은 1926년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 ‘형제주점’으로 출발했다. 3대 87년을 이어오는 서울식 추탕(鰍湯)의 원조다. 서울 토박이인 창업주(김기선, 1932년 작고)는 다섯 형제를 두었고, 아들 형제들은 광복과 6․25전쟁, 4․19 등 민족의 격동기를 차례로 거치며 시대마다 특색 있는 탕 맛을 살려내 서울 추탕의 기원을 이뤄냈다. 1970년대 말, 청계천개발로 성북구 하월곡동으로 이전했다가 이곳 역시 재개발에 밀려 2007년 여름, 평창동 서울예고 입구로 옮겨 앉았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면 평창동 상명대학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오르다가 구기터널과 북악터널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다시 북악터널 방향으로 우회전해 100m쯤 우측 도로변 숲 속에 있다. 길가에 내건 간판은 형제추탕이 아닌 ‘형제추어탕’으로 바뀌었다.
미꾸라지는 끓이는 방법에 따라 맛과 영양이 달라지는데, 서울과 경기지역에서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20가지가 넘는 재료를 차례로 추가해 육개장처럼 얼큰하게 끓여 내면서 추어탕이 아닌 ‘추탕’으로 부르고 형제추탕이 그 효시 집이다.
형제추탕은 한국 근대사의 주역들이 그 맛을 다져주었다는 것도 가문의 큰 자랑이다. 개업 초창기인 1940~50년대에는 신설동에서 가까운 고려대와 청량리에서 이화동으로 이어지던 서울대의 각 단과대 재학생과 교수들, 그리고 당시 정계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주축을 이뤘다. 이때 고객이던 민족지도자 김구와 조병옥, 청년 김두한, 체육인 손기정, 문화인 조풍연 씨 등은 주인 형제들과도 각별했다. 가게를 운영하던 다섯 형제의 마음씨도 넉넉해 재학생들이 술값으로 맡긴 학생증이 하월곡동으로 이사할 때 큰 포댓자루로 하나 가득했다고 한다.
지금 평창동 형제추어탕의 주인은 5형제 중 막내이던 김윤희(2004년 작고) 씨의 둘째 아들 부부다. 1988년 칠순을 맞으며 미국에서 사업하던 아들 영식(64) 씨를 불러내 가업을 맡기고 은퇴했다. 그때 아들에게 일러준 말이 가업은 형편이 넉넉하다고 접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업을 물려받은 김씨는 유소년시절 추어탕을 밥 먹듯 먹었다. 그래서 형제추탕의 탕 맛은 자신만큼 정확하게 살려낼 사람이 없다고 믿고 있고,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이후 국솥만큼은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
추탕 한 솥이 완성되기까지는 뜨거운 솥 곁에 서서 20가지가 넘는 재료를 순서대로 가려 넣으며 꼬박 1시간 30분을 버텨내야 한다. 사골과 양지를 삶아 우려낸 국물을 혼합해 기본 국물을 만들어 큰 솥에 붓고 설설 끓여가며 채소와 표고버섯, 양파와 대파, 박속과 숙주나물, 두부와 유부, 달걀 등을 차례로 넣으며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등으로 양념하고, 탕이 완성될 무렵에 집 간장으로 간을 한 뒤 산 미꾸라지를 통째로 쏟아 붓고 뜸 들이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모든 소재가 한 솥에서 완벽하게 일체감을 이루어 최상의 맛으로 완성되도록 하는 것이 형제추탕의 고유한 대물림 손맛이다.
작업은 처음서부터 끝까지 육감으로 이어진다. 재료 하나하나가 모자라거나 넘치지 말아야 하고, 여기에 10년 20년씩 밑간장이 가라앉아 소금이 된 묵은 간장으로 간을 해 깊은 맛을 살려내는 데, 이 과정은 가족들만이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손맛이 벤 추탕인 만큼, 전혀 기름지거나 냄새가 없다. 담백하고 얼큰하지만 짜거나 맵지 않고 달콤하고 훈훈한 맛이 난다. 통째로 넣어 꼭 알맞게 익힌 미꾸라지도 입안에서 씹히는 질감이 신선하고 상상 밖의 깊은 맛이 난다.
형제추어탕의 대물림 간장은 10년 20년씩 햇간장을 달여 보충해 넣는 큰 독이 여럿 있다. 20년 간장독에는 밑에 하얀 소금 테가 형성되면서 장맛을 뒷받침하는데, 종종 조미료를 넣었다는 오해를 살 정도로 달콤한 맛이 난다.
손님들의 취향을 따라 남도식으로 끓여내는 추어탕도 본격적으로 메뉴에 올리고 있는데, 사골육수에 부드러운 우거지와 미꾸라지를 삶아 넉넉하게 갈아 넣고 간은 3년 묵은 된장으로 한다. 추어탕을 메뉴에 올리면서 손님이 편하도록 간판을 ‘형제추어탕’으로 바꿔달았다고 한다.
자연 숲에 가려진 산자락에 넓은 주차공간을 갖춘 2층 건물은 현대식 감각의 1층 홀과 2층 예약실이 있어 추어탕 집으로 이만한 분위기를 갖춘 곳이 없다. 주말에 추어탕을 즐기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산바람을 쐬는 즐거움도 신선하다.
- 메뉴 : 메뉴 : 추탕 8천 500원, 추어탕 8천 원.
- 주소 : 종로구 평창동 281-1(서울예고 입구)
- 전화 : 02-919-4455, 379-7562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