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ASTE

[여름맛집] 40년 전통의 법원리 초계탕


땡볕에 잠깐이라도 나가 있으면 바삭하게 구워질 것 같은 날씨가 계속 되고 있어요. 이런 여름날이면 어떤 음식으로 어떻게 더위를 식혀볼까 하는 고민에 휩싸이게 마련이죠. 비록 몸은 사무실 안에서 떠날 수 없을지라도 잠깐이라도 멀리 떠나 맛있는 여름 음식을 먹는 상상을 해보세요. 이러면 더 고문이 될지도 모르지만, 잠깐은 행복할 수 있을테니까요.


오늘은 늦여름 더위를 싸하게 식혀줄 첫번째 맛집으로 파주에 있는 법원리 초계탕을 소개해 드릴게요. :-)



이냉치열(以冷治熱)은 물로 불을 끄듯 찬물로 열기를 식혀주는 정공법이다. 무더운 날 빙수나 냉커피 냉면 등 찬 음식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당장은 시원하지만 에어컨 바로 앞에서 찬 음식으로 속을 가득 채우면 자칫 몸 안팎의 체온이 불균형상태가 지속되어 머리가 어지럽고 콧물이 나오는 여름 감기를 유발할 수 있다.


아니면 몸의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진 상태가 지속되어 설사나 배탈을 일으킬 수도 있다. 몸의 열기를 급격하게 힉히는 것보다는 서서히 자연스럽게 식혀주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래서 냉면집에는 회전식 선풍기를 매달아 방안의 온도를 골고루 조율해가며 에어컨의 온도도 너무 낮게 틀어놓으면 오히려 좋지 않다.


서울과 서울근교에서 여름철 찬 음식을 대표하는 냉면집들 중에 가장 긴 줄을 세운다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법원리 초계탕(醋芥湯)

실향민 2세 부부가 운영하는 40년 내력의 평안도 지방 토속음식점이다. 주 메뉴가 초계탕 냉면 한 가지고, 실비 막국수가 하나 더 곁들여 있다. 주인 김성수 씨(58세)는 19세 때, 가업을 이어받아 40년 가깝게 손수 음식을 매만져 온 독보적인 평양냉면 전문가다.


초계탕은 평안도 사람들이 특별하게 즐기는 냉면이다. 여름날 복달임 음식으로 주부들이 직접 만들어 가족이나 이웃이 어울려 여럿이 차별 없이 나눠먹는다. 그런 만큼 손이 많이 가고 온갖 정성을 들인다.



초계탕 냉면은 냉면이나 막국수와 달리 나이든 씨암탉이거나 살이 많은 장닭을 잡아 사용한다. 닭의 기름이 충분히 빠지도록 푹 삶아 선선한 곳에 놓아 식힌 뒤, 살을 잘게 뜯어 오이와 풋고추 과일 등 갖은 야채와 함께 채쳐놓는다. 그리고 닭 삶은 국물과 알맞게 익힌 김칫국물을 섞어 냉면국물을 만드는데, 식초(食醋)와 겨자(芥子)를 코가 맵도록 넉넉하게 풀어 넣는다. 이렇게 닭고기와 육수가 준비되면 큼직한 양푼에 담아 얼음을 가득 띄워놓고 둘러 앉아 국수를 나눠 말고 닭고기 무침을 얹어 나눠 먹는다.



얼음을 우적우적 씹어가며 찬 냉면으로 몸 안을 가득 채우고 나면 닭살이 돋을 정도로 땀이 말끔하게 가라앉는다고 이야기한다. 찬 냉기로 몸을 완벽하게 식혀주는 차가운 복달임 음식인 셈이다.


초계탕은 그 이름 자체에 남다른 맛 비결이 담겨있다. 초계탕은 식초(醋)와 겨자(芥)를 풀어 넣은 국물이라는 얘기다. 애초부터 국물에 식초와 겨자를 코가 맵도록 풀어 넣는데 다소 맵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이유가 또한 분명하다.


얼음처럼 찬 냉면으로 속을 가득 채워 더위를 한 순간에 말끔하게 털어내는 것은 좋지만,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배가 차가워져 허리를 감싸고 주저 앉을 수도 있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겨자를 듬뿍듬뿍 풀어 넣는다는 것이다. 차고 강한 자극을 즐기면서 부작용도 예방한다는 삶의 지혜다. 무더위로 아이들과 어른 모두 지치고 입맛이 없을 때, 함께 어우러져 실컷 먹고 즐기며 원기를 되찾되 뒤탈이 없고 온 몸의 순환기관을 화끈하게 촉진해주는 음식이다.



남쪽에 내려와 살던 실향민 1세대들이 대부분 고인이 된 지금은 더욱 귀한 음식이 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파주 법원리 초계탕집이 옛 방법 그대로 초계탕을 말아내고 있다. 음식 맛도 계절야채가 조금 달라졌을 뿐 크게 변한 데가 없다. 곁들여 내는 밀가루 부침도 아침 일찍 부쳐 놓았다가 한 차례 식혀 다시 지져 빳빳하고 쫀득하게 한 번 더 부쳐 깊은 맛을 내 상에 올린다. 음식 가격도 개업 때 정한 것을 20년 전에 한 번 올린 뒤, 그대로 또 20년을 고집해 오고 있다.



먹는 방법도 예전의 평양 사람들 먹던 방법대로 주인이 일러준다. 2백석 가까운 대형 식당이 주말은 1시간~1시간 30분 번호표를 받아들고 줄을 서거나 주변을 산책하며 번호를 호명할 때까지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법원리 초계탕 정보

  • 주소 파주시 법원읍 법원4리 391-3
  • 전화번호 031-958-5250
  • 메뉴
    • 초계탕
      • 2인 - 27,000원
      • 3~4인 - 36,000원
      • 4인 이상 1인 추가 - 9,000원
    • 춘천 막국수 - 5,000원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