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에서 문막으로 넘어가는 42번 국도를 타고 삿갓봉 방향으로 5km 남짓 가다 보면 고갯길 초입에 ‘걸구쟁이네’ 간판이 내걸린 샛노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영동고속도로가 막힐 때 문막IC에서 나와 여주와 이천으로 빠지는 지름길에서도 가깝게 연결된다. 1995년 이곳에서 멀지 않은 ‘목아불교박물관’ 구내에서 문을 열었다가 2000년대 초, 지금 자리로 옮겨 앉으며 보다 전문화했다.
주인 안운자(50)씨는 사찰음식이 지닌 순수한 맛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하나하나 현장을 찾아다니며 손에 익혀, 직접 솜씨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 20년을 헤아리고 있다. 사전 준비과정을 철저하게 거친 맑고 정갈한 음식이 신륵사를 찾는 신도들과 수도권의 많은 단골고객을 이끌고 있다.
여주 쌀과 여주 들녘에서 나는 농산물을 소재로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으로 만든 음식은 절 사람과 불자들에게 금하는 오신오채는 물론, 인공조미료와 젓갈 멸치까지도 일절 넣지 않는다. 직접 만든 묵과 두부, 꼭 알맞게 익혀내는 김치와 장아찌를 포함한 짭짤한 밑반찬 10여 가지, 그리고 철 따라 오르는 제철 산채와 들나물을 이용한 생채와 메밀수제비 된장국, 숭늉 등이 순수한 제맛이 깃들여 있다.
말려서 저장해두었던 묵나물은 다시 삶거나 불려서 충분히 우린 뒤, 볶거나 무쳐서 10여 가지를 상에 올리는데, 어느 것이나 구수한 향이 제대로 배어난다. 여기에 전과 튀각 등을 합하면 찬이 20가지가 훌쩍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육류는 한 톨 없이도 언제나 넉넉한 느낌이고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하다. 신륵사를 찾았다가 절의 소개로 예약하고 온 여신도들이 마치 나이 지긋한 비구니들이 거처하는 소박한 절집의 명절상차림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음식가격이 창업 때와 비교해 크게 변동 없는 것도 특징이다. 변한 것은 늘 20가지가 넘던 반찬을 손님들의 요청해 17가지로 줄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도 질그릇을 사용하는데, 다소 투박하지만 토속적인 음식 맛을 제격으로 받쳐준다.
들기름 냄새가 구수하게 배어나는 묵나물과 국을 대신해 내는 메밀수제빗국에서 배어나는 맑은 된장 맛이 각별하고, 독에서 익힌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도 제격으로 어울린다. 햇볕에 말린 여주 쌀로 지었다는 곤드레나물밥도 옛날 쌀밥 맛이 제대로 난다.
고갯길 아래 들녘이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쾌적한 분위기가 마치 절집처럼 신선하고, 원하는 손님들에게 된장과 돼지감자, 모과, 매실 원액을 작은 용기에 담아 판매도 한다. 외진 곳이지만 365일 쉬는 날이 없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메뉴 : 사찰정식(1인분) 1만 3천 원
- 주소 : 경기 여주군 강천면 간매리 496-5
- 전화 : 031-885-9875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